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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용동 원림으로 불리던 곳을 언젠가부터 윤선도 원림으로 많이 부르고 있다.
부용동 이름의 유래는 연꽃 봉오리가 터져 피는 골짜기라는 뜻의 부용동(芙蓉洞)이다. 한문도 연꽃 부, 연꽃 용. 부용동의 중심인 세연정에 가보면 왜 그런 이름이 생겼는지 이해가 된다. 원림이란 자연 그대로에 약간의 인공을 가미하여 생활공간을 만든 정원 같은 곳으로 우리나라 전통 정원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누가 정한 건지는 모르지만 윤선도 원림은 담양 소쇄원, 영양 서석지와 함께 조선 3대 민간정원(여기에 서석지 대신 강진 백운동원림을 넣는 경우도 있다)에 속하는 아름다운 곳이다. 이 세 곳 중에서도 단연 으뜸이라 말할 수 있다. 그 중심에는 세연정이 있다. 세연정(洗然亭)은 세상의 때를 씻는다는 뜻을 지닌 작은 연못과 정자이다. 정자가 5개가 있었다는데 지금은 세연정만 남아있다. 보길도의 작은 골짜기 계곡물이 흐르는 곳에 돌로 된 보(판석보)를 만들어 막아 작은 연못을 만들었고 7개의 바위가 자연스럽게 위치해 아주 조화롭다. 이 판석보는 국내 유일 석조보로 저수 및 다리의 역할을 하고 있다. 세연지의 동쪽 물가에는 돌로 만든 네모난 단을 둘 만들어 놓았는데 여기는 무희가 춤을 추고 악사가 풍악을 울리던 곳이라고 한다. 세연지를 한 바퀴 돌아보면 고산의 작품들이 어떻게 나왔는지 이해할만하다.
(2023년 8월 5일 사진)

낙서재와 곡수당은 서실을 갖추고 있는 살림집으로 세연정이 유흥과 풍류의 공간이었다면 이곳은 생활공간으로 보면 된다. 실제로 고산이 보길도에 마지막으로 들어와 생을 다할 때까지 이곳에서 보내게 된다. 이 둘은 가까이 있는데 곡수당 영역, 낙서재영역으로 나뉘어 있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먼저 낙서재는 조금 위쪽에 위치해 있고 건너편 산에 있는 동천석실과 마주 보고 있는 작은 초가집 동와가 있고 가장 깊숙한 곳에 강학, 독서, 생활의 공간인 낙서재가 위치해 있다. 고산이 생을 마감한 곳도 이곳이다. 이곳의 입지는 풍수지리적으로도 보길도의 가장 깊은 골 안에 있어 섬 안에서 가장 좋은 양택지라고 한다. 그리고 제사와 관련된 사당과 전사청이 있다.
아래에 있는 곡수당은 고산의 아들 학관이 거주하던 곳으로 골짜기물이 곡수를 이룬다고 곡수당이라 불렀다 한다. 곡수당 영역에는 곡수당과 서재 두 건물이 있고 섬 안의 작은 시내를 거스르지 않으며 그대로 살려 일삼교, 유의교 돌다리를 만들어 자연을 그대로 살린 우리 전통의 방식을 선택한 아름다움이 돋보인다. 서재는 강학공간으로 고산의 제자들과 아들이 고산에게 배우던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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