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란?
은행나무는 동아시아 원산으로 암나무와 수나무가 따로 존재하는 나무이다. 예전에 ‘은행나무는 침엽수일까? 활엽수일까?' 하는 질문이 있었는데 침엽수에 가깝다는 답을 들은 기억이 난다. 하지만 현재는 은행나무문이라는 독자 계통군으로 분류하는 것이 정설이라고 한다. 생물학적인 분류에 있어서도 은행나무는 은행나무문, 은행나무강, 은행나무목, 은행나무과, 은행나무속, 은행나무종으로 문, 강, 목, 과, 속, 종이 하나만 존재하는 유일한 식물이고 오랜 세월 고생대부터 여러 종이 있었지만 지금은 하나의 종만 살아남아 ‘살아있는 화석’이라는 별명도 있다. 그런데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에서는 은행나무를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가로수로도 쓰일 만큼 발에 차일 정도로 많은데 무슨 말이냐고 하겠지만 야생에서 사람의 도움 없이 자생하는 은행나무군락이 거의 없기 때문에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인류를 만나 공존하고 있고 인류가 멸종하면 함께 멸종할 생물 1위로 꼽히기도 한단다. 고생대부터 살아남은 나무라서 생명력이 강하기로도 유명한데 히로시마 원폭 투하 중심에서 2km 떨어진 곳의 은행나무가 아직도 살아남아 있다고 한다. 그리고 오랜 사찰에 가면 어느 고승이 땅에 꽂은 지팡이가 은행나무가 되어 지금도 살아있다는 말들 역시 은행나무의 생명력을 말해 준다. 오래된 은행 노목에서는 아래둥지에 맹아가 잘 돋아나는데 시간이 지나면 원줄기는 죽고 그 맹아가 자라서 원줄기처럼 자라는 경우가 많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천연기념물로 보호받고 있는 은행나무만 23건이 있다고 하니 그 생명력을 알 수 있고 그 나무들도 원줄기는 죽었지만 맹아가 자라서 지금까지 살아있는 나무도 많다고 한다. 그만큼 지역별로 알려진 은행나무도 많고 은행나무를 도목, 시목으로 선정한 지자체도 많다. 생명력이 신비한 것 중 또 하나는 다른 식물들이 바람, 곤충, 새를 이용해 수정하는 것에 비해 은행나무는 정세포가 비가 오면 빗물 속을 유영해서 암술까지 이동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이동하는지는 아직도 미스터리라고 한다. 은행 열매와 잎은 약효가 있어 식용이나 약용으로도 쓰이고 특히 혈액순환개선에 많이 쓰이고 있다. 그에 반해 독성도 있어 중국에서는 은행나무 달인 물로 농약으로도 쓰고 은행잎을 정화조에 담가 두면 장구벌레들도 죽는다고 한다. 그리고 은행잎은 잘 타지도 않고 살균성분이 있어 잘 썩지도 않는데 화석에 은행잎 화석이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책갈피로 은행잎을 꽂아 두면 책이 상하는 것을 막기도 하고 그 책갈피 또한 수십 년이 지나도 그대로 있다고 한다. 향교나 사찰 등에 오래된 은행나무가 많아서인지 우리나라에서는 영혼이 잘 깃드는 나무로 생각해 여러 이야기들이 있어서 영화 ‘은행나무 침대’와 ‘단적비연수’가 이런 소재를 이용했다고 볼 수 있다. 은행나무는 워낙 명소들이 많아 간략히 소개하도록 하겠다. 가깝고도 잘 모르는 신비로운 은행나무 명소로 떠나보자.
경북 영주 부석사 은행나무길
영주 부석사는 유홍준교수가 극찬한 ‘배흘림기둥’과 안동 봉정사 극락전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인 ‘무량수전’으로 알려진 오랜 역사를 가진 사찰로 ‘한국의 산사’라는 제목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도 선정된 곳 중 하나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부석사의 가장 아름다울 때는 부석사 올라가는 가로수길이 노랗게 물드는 가을이 제일이라고 생각한다. 동백꽃을 나무에 달려있을 때보다 떨어졌을 때가 더 아름다운 꽃이라 부르는데 개인적으로는 은행나무도 잎이 달려있을 때보다 반쯤 떨어져 있을 때가 더 아름답다고 생각되었던 곳이 이곳이다. 나는 부석사를 찾을 때면 항상 일몰 한두 시간 전에 가는데 그 이유는 무량수전 옆 석탑에서 바라보는 일몰, 백두대간 소백산맥으로 넘어가는 해넘이가 너무 좋아서 이다. 매년 12월 31일이면 사진작가들이 그 해의 마지막 일몰을 찍고자 많이 찾는 포인트이다. 부석사를 찾는다면 가는 길에 만날 수 있는 또 다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소수서원’도 꼭 들러 보기 바란다. 부석사가 있는 부석면에는 이 지방에서만 자라고 일반 콩의 두 배 크기인 부석태가 있는데 영주시에는 이 부석태를 이용한 맛집이 여럿 있다. 그중 풍기역 앞에 위치한 ‘한결청국장’은 부석태를 이용한 깔끔한 청국장정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경북 영양 서석지 은행나무
영양 서석지는 담양의 소쇄원, 완도 보길도의 윤선도원림과 함께 조선시대 3대 민간정원으로 꼽힐 정도로 작지만 예쁘고 특이한 정원을 가지 곳이다. 원래는 집 안마다 작은 연못에 연꽃 피는 여름이 더 아름답지만 마당 한 부분을 집주인 마냥 지키고 있는 400년 넘은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든 가을도 정말 아름다운 곳이다. 노란 은행잎이 만발할 때 가면 오랜 고택과 은행나무의 조화가 아름다워 대충 셔터를 눌러도 작품이 나오는 곳이 바로 지금이다. 인근 영양읍내 현리삼층석탑은 신라가 만든 조각이 뛰어난 보물이며 주변에는 레드뮬리라는 별명이 있는 핑크댑싸리가 1000여 평의 부지에 절정을 지나고 있다. 영양읍내 ‘영양탁주합동’은 전국에서 가장 오래된 양조장 중 한 곳으로 1915년에 지어진 곳으로 도시재생 뉴딜로 재탄생한 곳이다. 여기서 막걸리를 활용한 음식을 맛보는 것도 하나의 추억이 될 것이다.
경북 의성 사촌리 가로숲
의성 사촌리 가로숲은 천연기념물 405호로 수령 300년 이상의 1500여 그루의 나무가 심어진 마을의 1km가량의 방풍림으로 수종도 다양해 가을 단풍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그중 1000여 그루 정도가 은행나무라고 하니 노란 단풍을 느끼시기에는 부족함이 없을 듯하다. 서애 유성룡의 어머니 고향이 이곳 사촌마을인데 이 사촌숲에서 유성룡을 낳았다는 전설이 있기도 한다. 가을이면 단풍 인스타그램 성지로 조금씩 알려지고 있다고 하니 더 유명해지기 전에 찾으시는 것도 좋을 듯하다. 인근 단촌면에는 고즈넉한 천년고찰 고운사가 있는데 신라시대 최치원이 오래 머물러 그의 호를 따서 절의 이름을 지었다. 그리고 면소재지에는 백종원도 반한 마늘닭의 시조 ‘주영자마늘닭’에서 의성마늘과 닭튀김의 아름다운 만남을 느껴 보기 바란다.
경북 고령 다산면 은행나무숲
고령 은행나무숲은 대구시민들의 휴양지 중 하나인 화원유원지, 사문진나루터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낙동강변에 조성된 곳으로 자전거 전용도로가 있어 자전거를 즐기는 분들 많다. 또 강변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낙동강 강물과 은행나무와 갈대가 어우러지는 풍경도 담아낼 수 있다. 노을이 질 때면 하늘이 노랗게 물들었는지 강물이 노랗게 물들었는지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었지 구분이 힘들기도 한다. 강 건너 사문진나루터는 옛날 부산에서 배가 들어오던 곳으로 우리나라 최초로 피아노가 유입된 곳이다. 매년 초가을 이곳에서 전국 유일의 ‘100대 피아노 협연’이라는 독창적인 행사가 열린다. 사문진에는 주막촌도 있으니 시원한 강바람 맞으며 막걸리 한 잔도 좋으리라.
경북 경주 서면 도리마을 은행나무숲
도리마을은 경주시내에서 좀 떨어진 영천과 가까운 곳으로 은행나무가 작은 마을에 1만 그루나 심어져 있다. 50여 년 전쯤 임협시험장에 근무하던 한 사람이 가로수로 팔기 위해 은행나무 묘목을 심기 시작한 것이 벌써 많이 자라 15m의 키가 되고 숲을 이룬 곳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곳 은행나무숲의 특징은 빽빽하지만 질서 정연하게 줄지어 있다는 게 특징이다. 워낙 작은 마을인데 은행이 노랗게 물들 때면 많은 사람들이 찾아 주차할 장소가 많지 않으니 주민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경주나 영천을 지나는 길이면 국도로 가면서 잠시 들러 힐링하기 좋을 곳이다. 가장 가까운 ic가 있는 건천에는 국물이 있는 쫄면으로 유명한 ‘감로당’에서 가쓰오부시 베이스의 물쫄면 한 그릇 추천한다.
경북 경주 운곡서원 은행나무
운곡서원은 정조 때 만들어진 서원이지만 가을이면 유적으로 보다는 350년 된 노목 은행나무 때문에 관광객들이 더 많이 찾는 곳이다. 위치는 경주시이지만 포항에서 더 가까운 강동면에 위치하고 있으니 경주나 포항을 이 시기에 찾으신다면 잠시 들러 은행나무의 매력에 빠져 보시는 것도 좋을 듯하다. 단 주말에는 관광객이 많으니 이른 시간이나 평일을 활용하기 바란다. 인근 안강읍에 위치한 ‘까치식당’은 내가 맛본 최고의 돼지찌개로 점심에만 몇 시간 영업하는 곳이니 시간을 잘 맞추기 바란다.
경북 경주 통일전 은행나무길
경주 통일전은 신라의 삼국통일의 위엄을 기리고 한국 통일에 대한 의지와 염원을 담아 박정희대통령의 지시로 만들어진 곳으로 삼국통일의 주인공들인 태종 무열왕 김춘추와 김유신장군, 문무왕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그러나 이맘때면 통일전 안보다 입구 은행나무길이 더 유명하고 사람들이 많은데 주차하기도 좋고 은행나무도 아름다워 경주를 여행하시는 분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통일전 바로 옆에는 배롱나무와 연꽃으로 유명한 서출지도 있으니 여름에는 서출지를 찾으시고 가을에는 통일전을 찾는 게 좋겠다. 통일전 바로 뒤는 온 산이 유적지라는 경주 남산이 있어 역사여행과 등산을 같이 할 수 있다. 남산 너머 삼릉숲은 손에 꼽히는 아름다운 소나무숲이고 ‘남정부일기사식당’은 짬뽕이라는 메뉴이지만 돼지고기와 낙지볶음을 섞은 듯한 재미난 음식으로 유명한 식당이다.
경남 거창 의동마을 은행나무길
거창 의동마을은 거창읍내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조용한 마을로 SNS를 통해 많이 알려진 곳이다. 강변에서부터 작은 시골마을로 이어지는 은행나무 가로수길이 짧지만 인상 깊은 곳으로 11월 초만 되면 사람들로 붐비는 명소이다. 같은 거창에 위치한 연수사 은행나무도 유명한데 아스타국화로 유명한 감악산에 위치한 사찰에 있는 은행나무로 수령이 600년이 넘어간다고 한다. 아스타국화가 시들면 바로 은행나무를 보러 가는 것도 감악산을 다시 찾는 묘미 아닐까? 거창에는 몇몇 지역에서만 존재하는 비빔짬뽕이 유명한데 여러 중식당들이 있지만 그중 ‘창성식당’이 가장 깔끔하게 음식을 내놓아 많은 손님들이 찾는 곳이다.
경남 밀양 금시당 백곡재 은행나무
밀양 용평동에 위치한 금시당 백곡재는 조선시대 문인인 이광진이 말년에 고향으로 내려와 제자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봄이면 매화꽃이 뽀얀 미소를 보내고 여름에는 배롱나무꽃이 붉게 물들고 가을에는 은행나무가 샛노란 단풍을 선사하는 아름다운 곳이다. 이 은행나무는 이광진이 직접 심은 것으로 전해지고 금시당 아래를 유유히 흐르는 밀양강과의 조화가 아주 그만인 곳이다. 강 건너 월연정은 비슷한 곳으로 밀양강 바로 위에 지어져 뷰가 멋진 곳으로 알려졌고 바로 뒤 용평터널은 정우성 주연의 영화 ‘똥개’의 촬영지로 그것보다는 이끼터널이어서 포토스폿으로 유명한 곳이다. 부산사람들은 인정하기 싫겠지만 밀양 하면 돼지국밥 아닐까? 단골집, 설봉돼지국밥, 예림돼지국밥, 동부돼지국밥 같은 밀양대표 국밥집들이 있으니 가까운 곳에서 밀양돼지국밥의 세계에 빠져 보기 바란다.
은행나무는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이다 보니 경상도만 해도 너무 많은 명소들이 있다. 타 지역들은 다음 편에 다시 소개하도록 하겠다.
'국내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숨겨진 단풍명소 주왕산 주산지와 절골계곡 (2) | 2023.11.02 |
---|---|
노란 주단 은행나무 명소 : 전국 (2) | 2023.11.01 |
바람에 일렁이는 은빛 물결 억새군락지 전국명소 (2) | 2023.10.14 |
은빛 물결 일렁이는 억새 명소 : 경상도 (2) | 2023.10.11 |
세금내는 소나무 예천 석송령 (0) | 2023.10.08 |